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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념의 아픔인 제주 4.3 사건과 피해, 진상규명과 필자의 생각

by hungryone 202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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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아픔인 제주 4.3사건과 피해, 진상규명과 필자의 생각을 적어봤다.

 

 

이념의 아픔인 제주 4.3 사건

 

 

 

광주 민주화의 운동 5.18과 12.12사태는 전두환 씨의 만행을 뿌리 뽑고자 하는 민주화의 운동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보다 훨씬 전인 제주 4.3 사건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이념 대 이념의 싸움인 것이다. 이 싸움에는 자기들의 이념의 열강 대국도 포함되어 그동안 쉬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주도의 극심한 인명피해가 나서 제주도를 여성이 많은 섬으로 전략시켜 버리는 안타까운 결과를 담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의 3.1절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미국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고, 그렇게 모인 군중들은 3.1절 기념행사가 끝나자 가두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가두시위 중 기마경철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치는 사건이 발생되었는데 경찰은 그냥 두고 지나가자, 군중들이 항의하기 시작했고 이에 경찰들은 발포로 인해 주민 6명의 희생이 따랐다. 이 사건의 발달이 되어 제주 4.3 사건이 시작되었다. 이때의 경찰은 일본식민시대에 하던 경찰이 그대로 다시 광복 후 경찰이 되어 비겁하고 악랄한 경찰들이 대다수였다.

 

 

 

 

지금까지의 피해 실태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한 3.1 사건에 항의하여 1947년 3월 10일부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민. 관 합동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제주도민의 민.관 총파업에 미국은 제주도를 '붉은 섬' 즉 빨갱이 공산주의에 물든 사람들이라고 지목했다. 육지에서 경찰이 대거 파견되어 내려왔고, 극우단체인 서북청년회 단원들이 제주도에 들어와 경찰, 행정기관, 교육기관 등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빨갱이 사냥'을 한다는 구실로 테러를 일삼아 민심을 자극시켰고, 이는 4.3 사건 발발의 한 요인이 되었다. 당시 한반도는 이념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는 분담의 위기에 있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이반 된 민심과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을 결합하여 경찰과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무장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주도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350명의 무장대는 12개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 단원의 집을 지목해 습격했다. 이를 계기로 5.10 선거 반대의 유혈사태와 5월 1일 우익청년단의 제주읍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 6.23 재선거 실패로 미군정은 미국대령을 제주도 총사령관으로 파견해 무리한 검거작전을 단행하여 제주도에 대한 강경 토벌작전이 시작되어 도민들이 집단 희생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진상규명과 필자의 생각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이 시작되었다. 이 때는 아무 이유 없이 밀고하거나 가족이거나 친척이면 무조건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명목아래 죽임을 당했다. 이에 무장 대들은 해안마을을 습격하여 경찰가족과 우익인사를 살해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아래 죽이고 죽이는 각축전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1949년 3월 '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과거 행적을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방침에 한라산에 피신해 있던 1만 명이 하산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무차별적인 총살로 1,600여 명이 총살당하거나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내졌다. 제주도 4.3 사건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2만 5,000~ 3만 명의 주민들이 희생된 가운데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실제로 죽임을 당한  주민만 이런 것이고, 진압과정에서 다치는 주민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숫자의 인원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피신해 있던 주민들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었거나 겨울에 추위에 의해 동사당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국가의 이념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배 따뜻해서 그런 것인지 아직까지 자유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의 이념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 이념이 좋으면 남에게 선동하지 말고 공산주의에 나라에 가서 살던가 아니면 조용히 살았으면 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세계열강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고 있다. 이제는 다시는 4.3 사건과 6.25 전쟁등 이념의 갈등으로 고귀한 생명의 희생이 없었음 한다. 제주 4.3 사건의 세계 유네스코 등재를 필자는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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